
지난 3월 28일, 모처럼 만에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며 라오스에 있는 작은 마을 뿡빠오로 가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 버린 기름 값 탓인지 신나게 길이 뚫려서 지나치게 이른 시간에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앉아 한참을 기다려서야 중간 경유지인 베트남 하노이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하노이에서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비행 일정이 다음날이어서 하노이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인 29일에야 루앙프라방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뿡빠오 마을로 가기 위해 굽이굽이 산 사이로 뻗어 난 비포장도로를 따라 덜컹거리는 차를 타고 달려갔습니다. 그렇게 계속된 1박 2일의 여정 끝에 드디어 도착한 작은 마을 뿡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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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뿡빠오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산 능선을 따라 굽이굽이 도는 비포장길을 2시간 동안 달려야 한다. (사진 제공 하나누리 고재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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뿡빠오 마을은 요즘 세대의 키워드가 '화합'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600여 명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임에도 여러 민족이 섞여 살고 있었습니다. 다민족 국가에서는 보통 한 민족이나 부족이 모여 한마을을 구성하기에 뿡빠오 마을의 이런 모습은 좀 색다르면서도 무엇인가 서로 화합하며 살아가는 것 같아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이런 아름다운 모습 뒤에는 이들의 깊은 아픔이 숨어 있었습니다.
1975년 라오스의 마지막 왕이었던 사시방봉 왕을 폐위시키고 새롭게 들어선 라오스 정부는 화전의 금지, 아편 생산 근절, 보안 문제, 다양한 인종들의 문화적 통합을 이유로 지속적으로 국민들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있습니다. 뿡빠오 마을 주민들도 라오스 정부에 의해 라오스 이곳저곳에서 강제로 이주된 사람들입니다. 그동안 이웃, 친지들과 더불어 대대로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살던 고향에서 쫓겨나 낯선 곳에 강제 이주된 것입니다. 강제 이주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어서 뿡빠오 마을에만 작년에 6가구가 새롭게 강제 이주되어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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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위가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뿡빠오 마을에선 농지를 개간하기 위해 높은 산꼭대기까지 화전을 일군다. 하지만 곳곳에 묻혀있는 불발탄으로 인해 피해를 입기도 한다. (사진 제공 하나누리 고재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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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강제 이주되어 온 이들은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뿡빠오 마을의 척박하고 낯선 자연환경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뿡빠오 마을은 라오스 북부 산악 지대에 위치한 산골 마을입니다. 라오스 북부의 산악 지대는 평지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곳입니다. 자연적인 농지가 거의 없기에 이곳 주민들은 농사지을 땅을 일구기 위해 높고 가파르게 솟아 있는 산에 불을 질러 화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한번 화전을 일군 곳은 짧게는 5년, 길게는 8년까지 다시 농사짓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뿡빠오 주민들은 이 산 저 산을 넘어 다니며 계속해서 화전을 일구어야 했습니다. 때로는 농지를 개간하기 위해 20km 넘는 거리까지 산을 몇 개씩 넘어 다니기도 합니다. 그렇게 힘겹게 농사를 지어 밭벼와 옥수수를 수확하고 나면 다시 그것들을 수십kg씩 나누어 손수 등에 짊어지고 산을 넘어 몇 번이고 집까지 옮겨야 합니다.
또한 라오스에는 전 국토의 2/3 가량에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투하되었던 불발탄이 묻혀 있습니다. 작년 뿡빠오 마을에서만 밭 개간 중에 6개의 불발탄이 나왔습니다. 곳곳에 묻혀 있는 불발탄 때문에 이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밭을 개간하기 위해서는 때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힘겹게 농사를 지어도 밭에서 나는 수확량은 마을 사람들이 1년을 버티기엔 터무니없이 적습니다. 그래서 뿡빠오 마을 주민의 90%는 1년 내내 하루 한 끼 식사로 연명해야 합니다. 그마저도 떨어지는 4~5개월 동안의 우기에는 마을 주민들이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 자체가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을 주민 중 80~90% 가량이 영양 부족과 빈혈 증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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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뿡빠오 마을 학생들의 중학교 진학률은 남학생들의 경우 20%이하, 여학생의 경우 0%에 가깝다. (사진 제공 하나누리 고재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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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멀리까지 다니며 척박한 땅을 일구어야 하기에 아이들은 어린 나이부터 밭농사에 투입되어 일을 하곤 합니다. 이 때문에 뿡빠오 마을의 아이들은 거의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자아이들의 경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대략 20% 정도만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밭농사에 동원됩니다. 여자아이들의 경우는 상황이 좀 더 심각해서 중학교에 진학하는 학생이 0%에 가깝습니다. 대신 여자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3~14세가 되어 초경을 시작하면 조혼을 해서 15~17세에 아이를 낳습니다. 제대로 성장하지 않은 어린 산모가 영양 상태마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출산하기 때문에 뿡빠오 마을의 유아 사망률은 40%를 웃돕니다.
하나누리는 강제 이주된 아픔과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싸워야 하는 뿡빠오 마을 주민들의 소식을 듣고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논의했습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뿡빠오 마을의 주민들을 위해 작지만 긴급한 일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현재 마을의 가장 긴급한 필요는 다가오는 우기를 버텨 낼 수 있는 식량입니다. 4월 말부터 10월까지 계속되는 우기는 우리의 옛 춘궁기와 닮아 있습니다. 1년의 농사한 수확물이 나오기 시작하는 10월이 되어야 먹을 것이 생기는데 보통 7월 말이 되면 비축해 둔 식량이 바닥을 드러내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굶주림과 싸워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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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뿡빠오 마을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평화가 깃드는 날이 오길 소망한다. (사진 제공 하나누리 고재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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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누리는 (사)평화삼천과 함께 뿡빠오 마을 주민들의 생존이 위협받는 몇 개월간의 우기 동안 이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식량을 지원하고자 합니다. 1인당 식량 지원 기준은 어른은 하루 300g, 아이들은 하루 150g입니다. 배급량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는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최소치에 가깝습니다. 우리 주머니에 있는 500원짜리 동전 하나면 어른과 아이 각 한 명에게 한 끼 식사를 선물할 수 있습니다.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나누는 시간은 뿡빠오 마을 주민들이 떠나 온 고향을 생각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하루 중 가장 평화로운 시간입니다.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삶 때문에 매일 아침마다 눈을 뜨는 것이 괴로울 수 있는 뿡빠오 마을 사람들에게 가족과 함께 둘러앉을 수 있는 아침 밥상이 있음은 하루를 시작하는 소망의 시간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선물한 밥은 뿡빠오 마을 사람들에게 소망이며 평화의 밥상이 되어 갑니다.
뿡빠오 마을에 평화의 밥상을 선물해 주세요.
☞해피빈 모금함: https://happylog.naver.com/hananuri/post/PostView?bbsSeq=43081&artclNo=123461326328
지난 3월 28일, 모처럼 만에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며 라오스에 있는 작은 마을 뿡빠오로 가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 버린 기름 값 탓인지 신나게 길이 뚫려서 지나치게 이른 시간에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앉아 한참을 기다려서야 중간 경유지인 베트남 하노이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하노이에서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비행 일정이 다음날이어서 하노이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인 29일에야 루앙프라방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뿡빠오 마을로 가기 위해 굽이굽이 산 사이로 뻗어 난 비포장도로를 따라 덜컹거리는 차를 타고 달려갔습니다. 그렇게 계속된 1박 2일의 여정 끝에 드디어 도착한 작은 마을 뿡빠오.
▲ 뿡빠오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산 능선을 따라 굽이굽이 도는 비포장길을 2시간 동안 달려야 한다. (사진 제공 하나누리 고재근)
뿡빠오 마을은 요즘 세대의 키워드가 '화합'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600여 명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임에도 여러 민족이 섞여 살고 있었습니다. 다민족 국가에서는 보통 한 민족이나 부족이 모여 한마을을 구성하기에 뿡빠오 마을의 이런 모습은 좀 색다르면서도 무엇인가 서로 화합하며 살아가는 것 같아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이런 아름다운 모습 뒤에는 이들의 깊은 아픔이 숨어 있었습니다.
1975년 라오스의 마지막 왕이었던 사시방봉 왕을 폐위시키고 새롭게 들어선 라오스 정부는 화전의 금지, 아편 생산 근절, 보안 문제, 다양한 인종들의 문화적 통합을 이유로 지속적으로 국민들을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있습니다. 뿡빠오 마을 주민들도 라오스 정부에 의해 라오스 이곳저곳에서 강제로 이주된 사람들입니다. 그동안 이웃, 친지들과 더불어 대대로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살던 고향에서 쫓겨나 낯선 곳에 강제 이주된 것입니다. 강제 이주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어서 뿡빠오 마을에만 작년에 6가구가 새롭게 강제 이주되어 들어왔습니다.
▲ 주위가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뿡빠오 마을에선 농지를 개간하기 위해 높은 산꼭대기까지 화전을 일군다. 하지만 곳곳에 묻혀있는 불발탄으로 인해 피해를 입기도 한다. (사진 제공 하나누리 고재근)
고향에서 강제 이주되어 온 이들은 슬픔을 느낄 새도 없이 뿡빠오 마을의 척박하고 낯선 자연환경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뿡빠오 마을은 라오스 북부 산악 지대에 위치한 산골 마을입니다. 라오스 북부의 산악 지대는 평지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곳입니다. 자연적인 농지가 거의 없기에 이곳 주민들은 농사지을 땅을 일구기 위해 높고 가파르게 솟아 있는 산에 불을 질러 화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한번 화전을 일군 곳은 짧게는 5년, 길게는 8년까지 다시 농사짓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뿡빠오 주민들은 이 산 저 산을 넘어 다니며 계속해서 화전을 일구어야 했습니다. 때로는 농지를 개간하기 위해 20km 넘는 거리까지 산을 몇 개씩 넘어 다니기도 합니다. 그렇게 힘겹게 농사를 지어 밭벼와 옥수수를 수확하고 나면 다시 그것들을 수십kg씩 나누어 손수 등에 짊어지고 산을 넘어 몇 번이고 집까지 옮겨야 합니다.
또한 라오스에는 전 국토의 2/3 가량에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투하되었던 불발탄이 묻혀 있습니다. 작년 뿡빠오 마을에서만 밭 개간 중에 6개의 불발탄이 나왔습니다. 곳곳에 묻혀 있는 불발탄 때문에 이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밭을 개간하기 위해서는 때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힘겹게 농사를 지어도 밭에서 나는 수확량은 마을 사람들이 1년을 버티기엔 터무니없이 적습니다. 그래서 뿡빠오 마을 주민의 90%는 1년 내내 하루 한 끼 식사로 연명해야 합니다. 그마저도 떨어지는 4~5개월 동안의 우기에는 마을 주민들이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 자체가 기적과도 같은 일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을 주민 중 80~90% 가량이 영양 부족과 빈혈 증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 뿡빠오 마을 학생들의 중학교 진학률은 남학생들의 경우 20%이하, 여학생의 경우 0%에 가깝다. (사진 제공 하나누리 고재근)
또한 멀리까지 다니며 척박한 땅을 일구어야 하기에 아이들은 어린 나이부터 밭농사에 투입되어 일을 하곤 합니다. 이 때문에 뿡빠오 마을의 아이들은 거의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자아이들의 경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대략 20% 정도만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밭농사에 동원됩니다. 여자아이들의 경우는 상황이 좀 더 심각해서 중학교에 진학하는 학생이 0%에 가깝습니다. 대신 여자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3~14세가 되어 초경을 시작하면 조혼을 해서 15~17세에 아이를 낳습니다. 제대로 성장하지 않은 어린 산모가 영양 상태마저 좋지 않은 상태에서 출산하기 때문에 뿡빠오 마을의 유아 사망률은 40%를 웃돕니다.
하나누리는 강제 이주된 아픔과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싸워야 하는 뿡빠오 마을 주민들의 소식을 듣고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논의했습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뿡빠오 마을의 주민들을 위해 작지만 긴급한 일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현재 마을의 가장 긴급한 필요는 다가오는 우기를 버텨 낼 수 있는 식량입니다. 4월 말부터 10월까지 계속되는 우기는 우리의 옛 춘궁기와 닮아 있습니다. 1년의 농사한 수확물이 나오기 시작하는 10월이 되어야 먹을 것이 생기는데 보통 7월 말이 되면 비축해 둔 식량이 바닥을 드러내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굶주림과 싸워 가야 합니다.
▲ 뿡빠오 마을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평화가 깃드는 날이 오길 소망한다. (사진 제공 하나누리 고재근)
하나누리는 (사)평화삼천과 함께 뿡빠오 마을 주민들의 생존이 위협받는 몇 개월간의 우기 동안 이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식량을 지원하고자 합니다. 1인당 식량 지원 기준은 어른은 하루 300g, 아이들은 하루 150g입니다. 배급량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는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최소치에 가깝습니다. 우리 주머니에 있는 500원짜리 동전 하나면 어른과 아이 각 한 명에게 한 끼 식사를 선물할 수 있습니다.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나누는 시간은 뿡빠오 마을 주민들이 떠나 온 고향을 생각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하루 중 가장 평화로운 시간입니다.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삶 때문에 매일 아침마다 눈을 뜨는 것이 괴로울 수 있는 뿡빠오 마을 사람들에게 가족과 함께 둘러앉을 수 있는 아침 밥상이 있음은 하루를 시작하는 소망의 시간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선물한 밥은 뿡빠오 마을 사람들에게 소망이며 평화의 밥상이 되어 갑니다.
뿡빠오 마을에 평화의 밥상을 선물해 주세요.
☞해피빈 모금함: https://happylog.naver.com/hananuri/post/PostView?bbsSeq=43081&artclNo=123461326328